[아니리]
이렇듯 방아를 찧고, 점심밥 걸게 얻어묵은 후에, 그 자리를 떠났구나. 또 한 모롱을 돌아드니, 어떠한 여인이 심봉사를 소상각지 알고 찾거늘, ‘이상한 일이다. 이 곳에서 나를 알 리가 만무한디, 누가 나를 알고 나를 찾는고?’ 그 여인을 따라가니, 외당에 앉혀놓고 석반을 든든히 먹인 후에, 또 다시 나오더니, “여보시오, 봉사님. 내당에서 부인 이 찾으시니 어서 들어가사이다.” “아니, 나는 봉사만 되었지 무슨 독경 같은 것은 못 하는 봉사요. 혹 댁이 의단 있소?”
내당에 들어가니, 어떠한 부인이 좌를 주어 앉힌 후에,
[중모리]
그 부인이 허는 말이, “소녀는 안가이요, 나도 맹인으로 부모 일찍 기세허고, 어려서 복술을 배와 평생을 아자지라. 이십오 세에 길연이 있난디, 금년 이십오 세일뿐더러, 간밤에 꿈을 꾸니, 하날의 일월이 떨어져 물에 잠겨 보이기로 심 씨 맹인인 줄 짐작허고, 소녀가 품안에 안아 보였으니 인연인가 허옵니다.”
[아니리]
“무치하나 저바리지 마옵소서.” 심봉사 속으로는 좋으나, “어디 그럴 수가 있소?” 어찌 되었든지 간에 그날 밤 동방화촉의 호접몽을 꾸었구나. 심봉사 아침 일찍 일어나 수심 겨워 허는 말이, “여보시오, 안 씨 맹인. 내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소. 내가 불 속에 들어가 보이고,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를 덮어 보이고, 또 가죽을 벗겨 북을 매어 보이니, 이 아니 흉몽이오? 안 씨 맹인 해몽을 허는디, “신입화허니 화락이요, 게피작고허니 고성이요, 낙엽이 귀근허니 자녀를 가봉이라. 그 꿈 장히 좋소. 오늘 궐내에 들어가면 좋은 증험이 있으리다.” “아니, 자녀를 가봉이라니? 자녀를 가봉이란 말은 참 천부당 만부당이제. 그건 참 천부당 만부당이여.” “아니올시다. 하여튼 궐내에 들어가시면, 좋은 증험이 있으리다.” 때마침,
[중중모리]
어전 사령이 나온다. 어전 사령이 나온다. “각도 각읍 맹인님네! 오날 잔치 망종이니, 바삐 나와 참례허오!” 골목골목 다니며, 이렇듯 외는 소리 원근산천이 떵그렇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