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마누라,
이 박통 속에서는 쌀과 돈이 많이 나왔으니,
저 박통속에서는
무엇이 나오는지 한번 타 봅시다”
흥부 내외간에
또 한 통을 따다 놓고 타 보는디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시리렁 실건 당거주소!
이 박을 타거들랑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은금보화만 나오너라
은금보화 나오면은
우리 형님 전에 받칠란다
시리렁 실건 시리렁 실건
실건 실건 당거주소!”
흥부 마누라가 이말 듣더니
“나는 나는 나는 안탈라요
형제간이라 잊으셨소?
엄동설한 치운 날에
수다헌 어린 것들과
구박 당허던일 생각허면
곽 속에 들어도 못잊겄소
나는 나는 안 탈라요”
흥부 듣고 화를 내며.
“타지 말어라, 타지말어!
안탈라면 말려무나
갑갑헌 사람아 내 말 듣소
여자라 허는 것은
상하 의복이로다
의복은 떨어지면
다시 지으면 또 의복이요
형제는 일신 수족이로다
수족한번 끊어지면
둘다 병신이 되느니라
우리 형님은
한번 아차 돌아가시면
조선 팔도 너른 곳에
얼굴인들 어디서 보겄느냐?”
흥부 마누라 이말 듣더니,
“아이고 여보 영감!
내가 잘못했소
다시는 그런 말 안 헐라요”
“아믄 그래야제”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시리렁 실건 당거주소
강상의 떳난 배가
내 박 한통을 당헐 쏜가!
시리렁 실근 시리렁
실건 실근 실근 당거주소”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시리렁 실근
실건 실건 실건 실건,
쓱싹 톡 칵
박이 쩍 벌어져노니
그 박 속에서는 웬갖 비단이 나왔겄다
흥부 마누라 좋아라고
“아이고 여보 영감!
이 박 속에서는
비단이 많이 나왔으니,
무슨 색깔이고
무엇무엇인지 내가 한번 세어 볼까요?”
“마누라 맘대로 허시오”
흥부 마누라가
비단을 들고 한번세어 보는디
붉은단, 푸른단,
일광단, 월광단
서황모 요지연의
진상허던 천도문
적설이 만공산허니
절개 있는 송죽단
등태산소천하에
공부자의 대단
남양 초당 경 좋은데
만고 지상의 와룡단
오랑캐를 내몰아서
태평건곤의 대원단
쓰기 좋은 양태문
인정 있는 은조사며
부귀다남 복수단
삼순 구식의 궁초로다
길주 명천 가는 베,
강진 해남 극상 세목,
한산 모시, 임천모시,
생수 삼팔, 갑사까지
그저 꾸역나와
흥부 집이 부자가 되네
“아이고 여보 마누라!”
“비단이 이렇게 많이 나왔으니
거, 마누라 옷이나 한 벌 해 입어보소”
“아이고 영감!
나는 평생
송화색 삼회장저고리가 좋습니다.
영감께서는
뭔 색깔이 좋습디까?”
“아 나는 껌지 않는 먹공단이 좋대”
흥보가
먹공단으로 한번 꾸며 보는디
먹공단 망건,
먹공단 갓끈,
먹공단 두루마기,
먹공단 조끼,
먹공단 저고리,
먹공단 바지,
먹공단 버선,
먹공단 허리띠,
먹공단으로
손수건을 들고
“어떤가? 날 보소”
“그러고 보니 영감께서는 하릴없는 까마귀 같소”
흥보 마누라도 꾸미는디
송화색 댕기,
송화색 저고리,
송화색 치마,
송화색 당의,
송화색 속곳,
송화색 속속곳,
송화색 버선,
송화색 허리띠,
송화색으로
수건을 들고
“어떻소? 날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