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사또 이 곳을 당도허여, “여러 농부들 수고들 허시오. 농부 중 좌상이 뉘시오?” 한 농부 썩 나서며, “거 좌상 찾으셨소? 내가 좌상이요마는 댁의 거주성명은 무엇이요?” “예, 이리저리 떠도는 과객이 무슨 거주가 있으리오마는 그저 이서방이라고 허오. 좌상의 성명은 무엇이오오?” “나는 태 서방이오.” 어사또 들으시고, “남원에는 본시 진진방태가 많이 살겄다. 그럼 고을 일도 잘 알겄소.” “우리네 농부가 무엇을 알것소마는, 들은 대로 말허자면, 우리 고을은 사망이 물밀 듯 헌다 헙디다.” “아니, 어찌허여 무슨 사망이 물밀 듯 헌단 말이오?” “예, 말이 났은께 말이지, 고을 원님은 주망이요, 책실은 노망이요, 아전은 도망이요, 백성은 원망이라. 이래서 사망이 물밀 듯 헌다 헙디다.” “이 고을 정사도 말이 아니구나. 그런데 한 가지만 더 물읍시다. 남원의 춘향이는 어찌 되었는지요?” “예, 춘향이는 올라가신 구관자제 도련님과 백년가약 맺고 수절을 허고 있는디, 신관 사또 내려와서 수청 아니 든다 허여 중장을 때려 옥에 가뒀는디, 내일 본관 사또 생신잔치 끝에 춘향을 올려 죽인다 합디다.” 어사또 들으시고 깜짝 놀래 춘향 일이 급했다 생각허시고 농부들과 작별하고 한 모롱이를 돌아드니,
그때여 춘향이는 옥방에 홀로 누워 혈로 편지 써서 지자시켜 보내는구나
이팔청춘 총각 아이가 시절가 부르며 올라온다. “어이 가리너, 어이를 갈거나. 한양 성중을 어이 가리. 오날은 가다가 어디 가 자며, 내일은 가다가 어디가서 잠을 잘거나. 자룡타고 월강허던 청총마나 있거드면 이 날 이 시로 가련마는 몇 날을 걸어서 한양을 가리.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한양 성중을 어이 가리. 내 팔자도 기박허여 길품팔이를 허거니와, 춘향 신세도 가련허네. 무죄한 옥중 춘향이 명재경각이 되었는디 올라가신 구관자제 이몽룡 씨, 어찌 이리 못오신고.”
어사또가 이 말을 들으시고, 저 애가 춘향이 편지를 가지고 한양을 가는 방자 놈이로구나. 어사또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얘야, 이리 좀 오너라!” 방자 돌아보며, “아니 시방 바삐 가는 사람 왜 부르요?” “너 어디 사느냐?” “나요? 나 다 죽고 나 혼자 사는 디 사요.” “음, 남원 산단 말이겄다.” “허, 거 당신, 알어 맞추기는 오뉴월 쉬파리시.” 어사또 허허 웃고, “네 이놈, 고얀 놈이로고. 얘, 그럼 너 지금 어디 가느냐?” “나요? 나 한양 묵은 댁에 가요.” “허허 그놈 어긋지기는 제족 이상이로고. 너 지금 한양 구관댁 간단 말이렸다?” “허 거 당신, 알어 맞추기는 칠팔월 귀뚜래미시.” “네 이놈, 그놈 참 고얀놈이로고. 얘, 그럼 너 가지고 가는 그 편지 좀 보면 어떠냐?” 지자 어이없어, “뭐요? 여보시오. 남의 남자의 편지도 함부로 못 볼 것인디, 더군다나 여자의 은서를 대로변에서 보잔 말이오?” “옛글에 하였으되, 부공총총설부진허여 행인이 임발우개봉이라 허였으니, 잠깐 보고 주면 그만 아니냐?” 지자 허허 웃고 지가 문장 속을 알아듣는 척허고, “허 거 당신 껍딱보고 말을 들어본께 꼴불견일세. 내가 꼭 안보여줄라고 혔는디 당신 문자 속이 하도 기특허여 보여주는 것잉께 얼른 보고 봉해주쇼잉” 어사또 편지 받고, “너, 이놈. 너는 저만치 한쪽에 가 있거라.” 그 편지 하였으되,
“별후 광음이 우금삼재에, 척서가 단절허고 약수 삼천리에 청조가 끊어지니, 북해 만리에 홍안이 없으매라. 북천을 바라보니 망안이 욕천이요, 운산이 원격하니 심장이 구열이라. 이화에 두견 울고 오동에 밤비 올 제, 적막히 홀로 누워 상사일념이 지황천로라도 차한은 난절이라. 무심헌 호접몽은 천리에 오락가락, 정부지억이요, 비불자성이라. 오읍장탄으로 화조월석을 보내더니, 신관 사또 도임 후에 수청 들라 허옵기에, 저사모피허옵다가 모진 악형을 당허여 미구에 장하지혼이 되겄사오니 바라건대 서방님은 길이 만종록을 누리시다 차생의 미진한을 후생에 다시 만나 이별 없이 사사이다.”
편지 끝에다 ‘아’ 자 쓰고, ‘아’ 자 밑에다 ‘고’ 자를 쓰고, 무명지가락인지 아드드드득 깨물어서 평사낙안 기러기 격으로 혈서를 뚝, 뚝, 찍었구나. “아이고, 춘향아, 수절이 무슨 죄가 되어 네가 이 지경이 웬일이냐? 나도 너와 작별허고 독서당 공부허여 불원천리 예 왔는디 네가 이 죽음이 웬일이냐?” 편지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아이고 춘향아, 이를 장차 어쩔거나.” 방성통곡으 울음을 운다.
그때여 방자가 어사또를 몰라봤다 허되, 그럴 리가 있겄느냐? 자세히 살펴보니 책방에 모시던 서방님이 분명쿠나. 그 일이 어찌 되겄느냐?
“아이고 서방님!”
“소인 방자놈, 문안이요. 대감마님 행차 후에 기체 안녕허옵시며, 서방님도 먼먼 길에 노독이나 없이 오시었소? 살려 주오. 살려 주오. 옥중 아씨를 살려 주오. “오냐, 방자야. 우지마라. 내 모양이 이 꼴은 되었으나, 설마 너의 아씨 죽는 꼴을 보것느냐? 우지를 말라면 우지를 마라. 충비로다 충비로구나. 우리 방자가 충비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