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강다운의 코딱지,
내 이름은 다운코딱지야.
코딱지가 어떻게 말을 하냐고?
놀랄 것 없어.
나도 살아 움직이는 코딱지잖아.
살아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말을 할 수 있게 된 거야.
게다가 다운이의 코딱지에
관심이 있는 너희들이라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으니까
나도 마음 놓고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
아무래도 요즘 다운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그러지 않고선
이렇게 코딱지를 파지
않을 리가 없어.
다운이가 콧구멍에
손을 대지 않으니
내 코딱지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데도
시간이 오랜 시간이 걸려.
예전에는 다운이가
자주 코를 파 준 덕분에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요즘엔 콧구멍 속만 들여다보다가
하루가 다 지나가곤 해.
한마디로 지루한 날들이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다운이가 코를 많이 파서
다운이 옷에 들러붙어
하은이네 코딱지도 만나고,
까불이 이든이네
코딱지도 만나서
이야길 나누곤 했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우리 코딱지들은 딱딱해지거나
크기가 작아지거나
물렁물렁해지는 것과 상관없이
서로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
그래서 난 항상 가장
작은 몸집으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었지.
한 번은 다운이네 학교
담임 선생님의 코딱지를
만난 적도 있을 정도로
누구나 맘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시절이 있었어.
그랬던 내가 이젠
콧구멍 한구석에 처박혀
밖에 나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니
지루해도 너무 지루한 요즘이야.
“에에에~ 에취~!”
오~예! 드디어 다운이가 재채기를 했어.
오늘은 내 코딱지 여러 조각이
다운이 콧구멍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어.
재채기 때문에 여행을 떠날 땐,
다운이에게 인사도 못하고
먼 곳으로 떠나게 되는 점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콧구멍을 탈출한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즐거워.
어,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여긴 다운이네 집이잖아.
다운이가 이 시간에 집에 있었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다운이는 보통 오후 네 시 반이면
놀이터에 나가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해.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집을 지키고 있네. 늘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가 놀지 않을 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지.
마침 저기 엄마 코딱지가 보여.
“엄마 코딱지, 다운이가 오늘은
왜 놀이터에 안 나가는 거야?”
“다운이가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아까 엄마한테 야단맞는 걸 봤어.”
엄마 코딱지는
큰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속삭여.
“에그. 오늘은 또 왜 그랬대~
엄마 말 좀 잘 듣지, 녀석.
오래간만에 기분 좋게
재채기 나들이를 나오나 했더니
겨우 집이잖아. 아쉽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섭섭한 마음을 엄마 코딱지에게
늘어놓아 보지만, 오늘도
엄마 코딱지는 끄떡도 안 해.
엄마 코딱지는 어쩜 저렇게
불평도 한번 안 하는 걸까?
“다운코딱지야, 너무 불평하지 마~
이번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지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은
무궁무진하게 많다고.
내가 20대 때는 집에 좀 들어와
보는 게 소원이었어.
엄마가 영숙이로 불리던 시절에
얼마나 밖으로 돌아다녔는지
넌 모를 거야.
어떤 날은 영숙이가 잠도 안 자고
밤늦게 동대문 쇼핑몰을 돌아다니다가
해가 뜰 때가 다 되어서
집에 돌아온 적도 있어.
그날은 내가 코피가 되어서
영숙이 방을 여행했지.
그땐 영숙이도 피곤했겠지만,
나도 정말 피곤했었어.
그래서인지 난 지금처럼
느긋하게 지내는 게 좋아.
가끔 마트에 나가고 가끔
교회에 나가고 하면서 적당한
코딱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지금이 난 너무 만족스러워.”
엄마 코딱지는 오늘도
영숙 씨의 한창때 이야기로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어.
내가 불평만 하면 저런다니까.
누가 엄마 코딱지 아니랄까 봐,
코딱지들도 어쩔 수 없이 주인을
닮아 가는 모양이야.
오늘은 오래간만에 여행을
나왔으니 다운이를 좀 관찰해봐야겠어.
할 일이 없을 때 다운이는
게임을 하지만,
나는 다운이를 관찰해.
이 녀석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는걸?
다운이가 책상에 앉아 개구리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스탠드까지 켜 놓고 수학
문제를 풀고 있어.
이렇게 진지한 모습은 처음이야.
그러고 보니 다운이 녀석
키도 좀 큰 것 같아.
늘 입고 자던 곰돌이 잠옷도
하늘색과 하얀색이 섞인
줄무늬 잠옷으로 바뀌어 있어.
책상에는 여전히
어지럽게 물건들을 늘어놓았지만,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아 놓고
쉴 새 없이 들여다보던
만화 캐릭터 카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네.
대신 그 자리에는
축구 골키퍼 장갑과
야구공 따위가 놓여있어.
이 녀석이 공부하고 운동하느라
코딱지를 팔 시간이 없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아.
한편으론 조금 섭섭하지만,
이런 변화는
다운이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녀석이 기특하게 느껴지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