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정승환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
또 나지막이 너를 불러도
반복되는 이 하루 속에서
너는 없은지 오래됐구나

한참을 욕조 안에 앉아
구부정한 내 등 언저리
네 손이 닿던 따스했던
영원 같던 시간들은 다

이제는 닦아내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넌 보란 듯이 살아갈 텐데
난 어디쯤에 멈춰버린 기차처럼

녹슨 레일을 바라보다가
앞으로 달려보려 애써도
자석처럼 달라붙어 있어
난 어디도 갈 수 없고 여기 그 자리

지저분해진 컵을 씻다가
이 그림이 재밌다 했잖아
우리 나눠 먹던 컵 안에는
몇 번의 물이 찼을까

이제는 비워졌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넌 보란 듯이 살아갈 텐데
난 어디쯤에 버려진 신발짝처럼

한쪽이 없인 의미 없잖아
닳아진 굽을 감싸 쥐고서
두 발이 스친 길에 떨어져
난 어디도 갈 수 없고
여기 그 자리

난 어디도 갈 수 없고
여기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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