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세월이 흘러 배좌수는
장화의 시집을 준비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어요.
너무 늦지 않게 준비해야 장화가 좋은 집에
시집을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장화의 남편감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장화에게 단단히 일렀지요.
“명심하거라, 이제 곧 혼인할 나이가 다가오니
더욱 몸가짐을 조심히 해야 할 것이야.
어디 갈 때는 절대 혼자 가지 말고
너의 남동생과 같이 가거라.”
장화는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훈계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라
생각하고 그 말에 따랐지요.
그 뒤로 장화는 물가에 물을 뜨러 가거나,
산에서 나물을 캘 때도 항상 호씨의 아들인 장달과 다녔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장화는 장달과 산에서
나물을 캐고 땔감을 얻으러 다녔지요.
그런데, 어디선가 ‘그르릉’ 거리는 낮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장화와 장달은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그곳에는, 바로 산채만 한 호랑이가 있었어요.
장화는 호랑이를 보자 너무 무서워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으악, 호, 호랑이가….”
장화 옆에 있던 장달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어요.
호랑이의 매서운 눈이 보기만 해도
기절할 정도였거든요.
장달은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온몸을 떨었지요.
호랑이는 천천히 그 둘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장달은 슬슬 뒷걸음질 쳤어요.
장달은 장화와 호랑이를 잠시 번갈아 보았어요.
그러고는 갑자기 장화를 호랑이 앞으로
툭! 밀고 잽싸게 산 밑으로 뛰어갔어요.
“아악! 장달아, 살려줘!”
장달은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장화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탁 막고 급하게 산에 내려갔어요.
장달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호씨가 있는
방문을 박차고 들어갔어요.
“아니, 이 녀석아, 어찌 이리 밤늦게서야 온 것이냐?
온몸이 땀투성이구나.”
“어, 어머니. 장, 장화 누이가 호랑이를 만나 죽었어요.”
이 말을 들은 호씨는 깜짝 놀라 장달에게 대답을 재촉했어요.
“아니, 장화가 죽다니. 그것이 무슨 소리더냐?
얼른, 마, 말을 해 보거라.”
“누이가 있던 곳에 호, 호랑이가 있었는데
제가 무서워서 그만 장화 누이를…,
어머니!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저도 너무 겁이 났다고요!”
호씨는 장달의 말을 놀란 표정으로 듣다가,
얼른 장달의 입을 손으로 막았어요.
“장달아, 조용하거라. 너 때문에 장화가
죽었다고 하는 날에는 우리 가족들 다 쫓겨난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이 어미가 다 처리할 것이야.
너는 절대로, 장화와 호랑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돼. 알겠지?”
장달은 단호한 표정을 한 호씨의 표정을 보고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음 날, 장화 홍련의 집은 난리가 났어요.
배좌수가 자기 딸이 사라졌다며
온 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어요.
“아이고, 우리 딸 장화가 하루아침에
그냥 휙 하고 사라졌네!
이를 어쩌면 좋누….
누가 우리 귀한 딸 못 봤는가?!”
온 마을 곳곳을 찾아 헤맸지만,
장화를 찾지 못한 배좌수는
집 앞마당에 털썩 주저앉아 펑펑 울음을 터트렸어요.
그런데 그때, 호씨가 떨리는 손으로
배좌수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어요.
“여보, 이것 좀 보세요. 장화가 이런 걸 남겼어요.”
“뭐? 장화가? 얼른 줘봐!”
배좌수는 호씨가 갖고 있던 종이를
잽싸게 낚아채고 글을 읽어내렸어요.
‘아버지, 어머니. 항상 저를 지극 정성으로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허나, 제가 혼인 전에 다른 이를 만나,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
차마 설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나이다.
저는 뱃속에 생긴 죄와 함께 사라질 터이니,
부디 평안하시고,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배좌수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구기더니,
이윽고 호씨 쪽으로 휙 돌아서
타박하기 시작했어요.
“당신이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우리 장화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장달은 장남이 되어 누이 간수도 잘못하고!
아이고, 내 팔자야. 장화야! 이 못난이야!
왜 밖에 함부로 다녀서
아이를 배는 그런 하늘이 노할 짓을 하느냐!”
배좌수는 설움과 분노를 내뿜으며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방 안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홍련은
큰 충격을 받아 그대로 주저앉았어요.
자신이 생각한 언니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홍련은 배좌수가 마당에 떨어뜨린
종이를 주워 글을 읽었어요.
그런데, 홍련이 알던 장화의 글씨체가 아닌
다른 글씨체가 쓰여 있었어요.
홍련은 분명 언니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내 언니를 모함한 사람을 꼭 찾고야 말겠어.’
홍련은 편지를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가 큰 다짐을 했어요.
그날 밤, 홍련은 기이한 꿈을 꾸었어요.
홍련이 있는 곳은 온통 안개로 자욱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어요.
홍련은 이곳이 어디인지 둘러보다,
저 멀리서 큰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봤어요.
안개에 가려 실제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어마어마하게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림자를 통해 알 수 있었어요.
“내 아가야. 너의 언니를 살리고 싶거든
저기 높은 북쪽 산 큰 바위가 있는 곳으로 오너라.”
그림자는 홍련에게 한마디의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어요.
홍련은 그 한마디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어요.
어디서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였어요.
꿈이 너무나도 생생했지요.
“이건 혹시, 언니를 살려주려는 하늘의 뜻인 건가?”
홍련은 밖으로 나와 저 멀리 보이는 북쪽 산을 보았어요.
건장한 남자도 올라가기 힘들다고 소문난 산이었지요.
하지만 홍련은 언니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어떻게 해서든, 언니를 꼭 살리고
언니의 원한도 풀어주겠어.”
홍련은 가족들이 잠든 달 밝은 밤에,
간단히 짐을 싸고 북쪽 산으로 향하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