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無名)

정밀아

이른 어느 봄날 떠나지 못한
찬 겨울 끝 바람에 옷깃 여미운다
언제부터였나 채 녹지도 않은
메마른 땅 위로 연초록이 어리운다
무너진 담장 아래 한 줌 흙 위에도
아무 투정도 없이 뿌리를 내린다
이름 없는 날에 이름 없는 곳에
이름 없이 살다가 또 이름 없이 간다
왜 없겠는가 수수한 이름 하나
그저 아무도 그 누구도 부르지를 않지
건네주겠는가 깊은 눈길 한 번
사뿐 들꽃을 피해서 조심히 가는 발길
온 산 뒤덮은 푸름은 큰 나무만 아니라
무심히 밟고 가는 수많은 그냥 풀
이름 없는 날에 이름 없는 곳에
이름 없이 살다가 또 이름 없이 간다
이름 없는 날에 이름 없는 곳에
이름 없이 살다가 또 이름 없이 간다
이름 없이 살다가 또 이름 없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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