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잔

P4
앨범 : 나귀의 턱뼈

겟세마네 동산에 내 자신을 그려볼 때
그대 손에 잡힌 잔에 내 얼굴이 비취네
달빛 아래 눈물로 마셨던 그 잔은
하찮은 나의 삶을 위해 땀구멍에선 피가 흐르네
그대를 잡은 군사도 흔들지 못하네 그 잔을 잡은 당신의 손
당신은 바보라며 말고의 귀를 베어버려도
그대 입술은 아직도 묵묵히 도살장으로 향하네
당신은 진정으로 머리 둘 곳 없는 나그네
허나 내 당신을 위해 세 번 부인 밖에 못하네
당신은 나의 영원한 그네라고 말했던 필리아의 고백
거짓 같던 말은 엊그제의 아가페
무리 속으로 마주친 부은 눈은 당신 맘에 깊이 숨은
나의 헛된 고백의 교훈
나 말없이 죄책감에 그 뒷모습만 바라보네
내 비록 배신자라도 주께선 나라도 살길 원하네
가지마 떠나지마 불러 봤자
세상에 미친 자 예수를 못 박아
가지마 떠나지마 불러봤자
사랑에 미친 자 맨발은 걸어가
내 죄는 예수 사형선고에 찬성표를
세상과 타협은 예수에게 폭력을
그러면서 기도 하는 것은 일종의 마술
마치 예수 옆구리에 박힌 채찍의 갈고리 같이
찢겨진 살 사이로 비췬 당신의 뼈와
아물지 못한 상처들은 벌레들의 잔치
세상에 미친 나의 삶이 당신이 잡은 바로 그 잔
당신의 머리를 우두둑 텆힌 가시 면류관
한때 향수를 풍기던 당신의 발
이젠 비린내로 못 박힌 나의 유일한 왕중의 왕
부은 눈은 뜨질 못해 얼굴에 흐르는 세상 침은 여태
상처보단 당신 맘을 쓰리게
바닥에 떨어진 당신 핏방울은 눈물로 덥히네
나무에 걸친 초라한 나체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아름답네
잔인한 이 광경을 다시 바라볼 때
이상하게도 내 맘은 여전히 평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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