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차 가는데

조상현

도창: (아니리) 이렇듯 즐길적에 하루는 호사다마라 좋은일만 있을소냐. 하루는 뜻밖에 경방자가 내려와 사또 동부승지 담상하야 내직으로 올라가게 되얏구나 이때여 사또께서는 도련님을 불러 분부하시되
사  또: (아니리) 내가 오늘 갈려 필히 상경할테이니 너는 내일 내행 보시고 발행하도록허여라
도  창: (아니리) 뜻밖에 이말을 도련님이 들어놓니 정신이 막막하고 흉중이 답답하여 하릴없이 춘향집으로 이별차 가는듸
도  창: (중몰이) 점잔허신 도련님이 대로변으로 나가면서 울음 울 리 없제마는 춘향과 이별헐 일 생각허니 어안이 벙벙, 흉중이 답답허여 하염없난 설움이 간장으로 끊어오르는구나
이도령: (중몰이) 당명황은 만고영웅이나 양귀비 이별으 울어 있고, 항우는 천하의 장사로되 우미인 이별으 울었으니, 날같은 소장부야 아니 울 수 있겠느냐? 춘향이를 어쩌고 갈꼬? 두고 갈 수도 없고, 다리고 갈 수도 없네. 저를 다려 가자허면 부모님이 금할테요, 저를 두고 가자 허면 그 마음 그 처사에 응당 자결을 헐 것이니 사세가 도무지 난처로구나
도  창: (중몰이) 길 걷는 줄을 모르고 춘향 문전을 당도허니
도  창: (중중몰이) 그때여 향단이 요염섬섬 옥지갑으 봉선화를 따다가 도련님을 얼른 보고 깜짝 반겨 나오면서,
향  단: (중중몰이) 도련님, 이제 오시니까? 전에난 오시랴면 담 밑에 예리성과 문에 들어 기침소리, 오시난 줄을 알겠더니, 오늘은 뉘기를 놀래시려 가만가만 오시나이까?
도  창: (중중몰이) 도련님 아무 말이 없이 대문안을 들어서니, 그때으 춘향 모친, 도련님 드리려고 밤참을 장만허다 도련님을 얼른 보고 손뼉 치고 나오며,
춘향모: (중중몰이) 허허 우리 사위 오시는 구나, 남도 사위가 이리 어여뿐가? 사또 자제가 형제분만 도면 데릴사위 내가 꼭 정헐걸, 한분 되니 쓸데 있소?
도  창: (중중몰이) 도련님 아무 대답없이 춘향 방문을 들어서니, 그때으 춘향이는 도련님 드리려고 금낭의 수를 놓다 도련님을 얼른 보고 단순호치를 열어 쌍긋 웃고 일어서며 옥수를 잡고 허는 말이,
춘  향: 오늘은 책방으서 무슨 소일 하시느라 편지 일장이 없사오니, 방자가 병들었소? 어데서 친구왔소? 벌써 괴로워 이러시오? 게 앉지도 못하시오. 뉘가 내집에 다니신다 험담을 들으셨소. 사또께 꾸중을 들으셨소? 약주를 과음허여 정신이 혼미헌가.
도  창: (중중몰이) 뒤로 돌아가 겨드랑이에다 손을 넣고 꼭꼭꼭 찔러 보아도 종시 대답을 아니허니,
도  창: (늦은 중몰이) 춘향이 무색허여 잡었던 손길을 사르르르르르르 놓고, 두로 물러나 앉으며 내새섞어 허는 말이 내 몰랐소. 도련님은 사대부댁 자제요, 춘향 나는 천인이라. 일시 춘정을 못이기어 잠깐 좌정 허셨다가 떼는 수가 옳다 허고 이별차로 와 계신디 속없는 이 계집은 늦게 오네, 편지 없네, 짝사랑, 외즐거움 오직 보기 싫었것소. 듣기 싫어 허는 말을 더하여도 쓸데 없고 보기 싫어 허는 얼굴 더보여도 병되나니, 나는 건넌방 우리 어머니 곁에 가서 잠이나 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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